2024. 11. 9. 09:39ㆍ카테고리 없음
조증이란
울증(우울증)이란
조울증이란
사전적의미
조울증 躁鬱症
정신이 상쾌하고 흥분된 상태와 우울하고 억제된 상태가 교대로 나타나거나 둘 가운데 한쪽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병. 조현병과 함께 2대 정신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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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우울증과 조울병 환자에게도 환상과 환청이 나타나는데 정신분열병으로 오진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알려졌지요. 조울병은 또 조-울-조-울의 단계를 거치기보다는 울-울-울-조처럼
우울증이 계속 되풀이되다가 조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조증이 나타나지 않은 조울병도 있습니다.
이런 특징은 1990년대 들어 학계에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조차 옛날 책으로 공부했다면 잘 모르는 것이죠.”
하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스승인 김용식 교수 밑에서 정신분열병을 배워 주로 이들 환자를 봐왔다.
그러나 1997년 ‘정신과의 보스’였던 홍강의 교수로부터 “우리 병원에서 우울증, 조울병 등 기분장애를 전담하는 의사가 없으니
그것을 전담하라”는 권유를 받고 방향을 틀었다.
하 교수는 “원래 정신의학에서 정신분열병에 대한 연구가 먼저 발달하고 나중에 기분장애의 연구가 있었으므로
그 동안의 공부를 헛공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듬해 조울병클리닉을 열어 환자를 돌보다
1999~2001년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프란시스코의대(UCSF)와 스탠퍼드대에서 교환교수를 하며 미국 환자들을 봤다.
언어가 다른 정신과 환자를 유학 온 동양인 의사가 진료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지만, 그는 이를 무난히 소화해냈다.
하 교수는 아칫걸음을 뗄 때부터 아버지 없이 지냈다. 아버지는 국비유학생에 선발돼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경남 함양군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어머니는 하 교수가 초등5학년 때 “아버지는 서울고를 수석 졸업했으니 너는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라도 가야 한다”며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작은집으로 등을 떠밀어 보냈다.
어릴 적부터 궁금증이 많았던 하 교수는 꿈속에 그린 아버지처럼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중1때 귀국한 아버지는
“기초과학을 하려면 나라가 부자여야 하고 과학은 일부 천재나 할 수 있다”며 다른 길을 권했다.
어머니는 의사의 길을 권했고, 하 교수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인문학과 기초과학적 특성이 강한 정신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중 3때 그의 진로가 결정된 것이다. 마침 “세 살 터울인 동생(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과 나는 부모, 유전자, 환경은 같은데 왜
생각과 느낌이 전혀 다를까”가 궁금했고 이를 풀고 싶기도 했다.
“미리 삶의 목표를 정한 것이 제게는 장점도 있었지만, 단점도 컸습니다. 의대에 진학해서 정신의학과 별로 관련이 없는
기초공부를 게을리 한 것이 대표적인 단점입니다.” 그는 의대 본과 3학년 때의 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참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 병으로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 여학생은 고통을 호소하며 “수술을 해주든지 진통제를 달라”
고 애원했지만 하 교수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머뭇거리다 입에서 나온 말이 “많이 아프세요?”였다.
그는 의사가 마음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공부에 매달렸다.
하 교수는 2003년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두 가지 굵직한 일을 했다.
하나는 병원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종이차트를 없앤 것.
UCSF의 전자의무기록(EMR) 사용 경험 때문에 발탁돼 국내 최초의 ‘완전 디지털(Full Digital) 병원’이 탄생하는 데
산파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4년 동안 일과의 80%를 기획조정실장 일을 하느라 조울병에 대한 원고를 다 써놓고 출간을
못할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일과의 20%인 진료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환자를 입원시켜 진료하는‘폐쇄병동’을 없애고
우울증과 조울병 등을 특화 시켜 진료했다. 그가 지금까지 본 환자는 단일병원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은 1200여명. 환자에 대한
진료경험과 연구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국제조울병학회 아시아지부 이사를 맡고 있으며 2007년 발족한 아시아조울병
네트워크의 부회장 겸 차기 회장이다. 또 곧 발족할 동아시아조울병포럼 초대회장으로 내정돼 있다.
하 교수는 우울증과 조울병을 제대로 알려 이로 인한 희생자를 줄이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우울증과 조울병은 뇌의 병이어서 환자가 마음가짐을 달리 한다고 치유할 수 없다”며
“사회적으로 기분장애 환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관심이 있어야 우울증과 조울병으로 인한 자살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환자들이 우울증 치료 받는다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의 감정은 뇌의 가장자리계(변연계)에서 생겨 이마엽(전두엽)의 조정을 통해 표출된다.
우울증은 이러한 메커니즘 가운데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울병은 여기에 더해 신경세포의 활성도 자체가 변한 것이 원인으로 여겨진다.
임상적으로 조울병은 고혈압과 저혈압이 함께 있는 것과 같아 진단과 치료부터 쉽지 않다.
조울증은 조증과 울증이 되풀이되지만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조울병은 마음이 들뜨는 조증과 가라앉는 울증이 되풀이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조울병에는 1형과 2형이 있는데 울증과 조증이 되풀이되는 1형 환자는 대체로 울증이 조증보다 더 많이 나타난다.
2형은 우울증과 함께 살짝살짝 들뜨는 ‘경조증’ 증세가 나타나는 것인데 우울증으로 오진되기 쉽다.
조울병의 조증을 기분 좋게 들뜨는 것으로만 아는 사람이 많지만, 증세가 심해지면 조증 상태에서 ‘열이 받는’ 일이 많아지며
화와 짜증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우울증은 주로 30대부터 발병하고 한 번 앓고 난 뒤 재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조울병은 10대부터 발병하며 우울증보다 훨씬 자주 나타난다. 1형은 2년에 한 번 꼴로 나타나며 평균 10번 재발한다.
2형은 이보다 훨씬 자주 재발한다. 우울증과 조울병도 조기에 발견해서 적극적으로 치유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다.
그러나 그것이 힘들기에 자살로 이어지곤 하는 무서운 병이다. 대체로 정신분열병은 이상을 발견하기 쉽고 병원에도 올 가능성이
높지만 기분장애는 그렇지 않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전국의 우울증 환자가 50만 명이라고 발표했지만, 환자의 20% 정도만
병원에 오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200만 명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환자다. 인구의 3~5%인 이들을 병원에 오도록 해야지
자살을 줄일 수 있다.
환자들은 대부분 병원에 와도 진단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당뇨병 환자의 혈당도 범위가 있듯. 남들보다 심하게 우울하거나 들떠서 생활에 지장이 있으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또 많은 환자들은 진단결과를 받아들여도 ‘약’은 안 먹겠다고 우긴다.
인간의 정신을 약으로 조절할 수 있느냐, 정신과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된다, 약물에 중독된다 등 약 복용을 거부하는 이유도 많다.
우울증 조울병은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비슷. 약 없이도, 약만으로도 치료할 수 없어
그러나 우울증은 뇌에 병이 든 것이다. 심한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생활습관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치유할 수 없듯
우울증, 조울병도 증세가 심하면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다. 우울증과 조울병은 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에서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비슷하다. 성인병이 식사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듯 기분장애도 생활요법 및 가족관리가 중요하다.
환자는 자신감을 가져야 이 병을 극복할 수 있다. 주위에서 칭찬을 통해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우선 일정한 시간에 자서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규칙적으로 식사해야 하며 뇌에 적절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밥과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자주 산책해서 햇빛을 자주 쬐어야 하며 적절한 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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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조울증치료연구인모임
#조아요 ㅡ 수도권조울증환자 가족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