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30. 12:11ㆍ사는 이야기
나와 같은 세대(70,80년)
우리 세대의 대부분이 그렇듯
부자간의 친밀도 친밀감은 심하게 표현하면 꽝이었다.
나 또한 엄근진
아버지덕에 사실상 고3까지
아버지랑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사실 지나 보니 내가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이었다.
대화를 나눠보려고 해도 아버지의 직업적 특성으로
함께할 시간도 많지 않았고
아버지 본인의 성격도 과묵하신 편이었다.
나중에 대학시절 고모님과 할머님께 들은 이야기였는데
울 아버지는 자기가 한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분이었다고 한다.
천둥번개 치는 날에도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깜깜한 시골길을 십리씩 걸어 다니는 심부름을 했고
집 앞마당에서 작은 도리질이라도 안 한다고 하면
절대 하는 법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별명은 '독불장군' ,
성질 까다로운 울 할머니는 "나는 나중에 영본이랑 살란다"라고 입버릇처럼 하시더니
결국 9남매 중 셋째요 차남인 아버지랑 삶의 마지막을 조금 사셨다.
나에게
언제나 무섭고 엄격한 아버지였지만
하늘나라로 가신 후 아버지와의 추억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든 것이
아버지의 사랑임을 깨닫기에
눈물은 늘 멈출 수가 없다.
"후회 없는 효도"라는 핑계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아직도 후회만 남는다.
그리고 지금 50대가 되어버린
나는 아버지란 존재는 언제나 많이 외롭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마음을 열고 조그마한 힘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오늘도 아버지가 그립다.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도 다 그러할 것이다.
결혼 후 임신소식을 알게 되고
출산 후 자라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로 성장하는 나를 보았다.
아버지는 처음이었다.
내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장남을 잃은 아버지는 차남으로 태어난 나를 너무나 아끼셨다.
물론 그걸 깨달은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지만...
나는 자라는 아들을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편지는 20년 후 두 권의 책이 되었지만...
처음 책을 썼던 마음이 끝까지 갔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아들에게 2가지 로망이 있었다.
첫 번째는 면도하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아들과 맥주 한잔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로망들은 산산이 부서졌다.
내 품을 떠난 아들은
사춘기를 핑계로 주초를 시작했고
대학입시 후 맥주 한잔을 권한 나에게
맥주는 배가 부르다며
자신은 소주파라 한다.
모두들이 그렇듯 로망은 로망일 뿐
현실은 헛꿈인가 보다.
그래서 섭섭한 마음에
서운하다 소리를 글로 전 했더니
아들은 아버지의 행동은 오버액션이라 한다.
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
세상에서
온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하고 소중한
내 아들
나도 내 아버지에게
그런 아들이었을 텐데
아들을 향한 로망을
써 내려가다가
결국
그리운 아버지가 보고 싶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아빠 사랑해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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