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8. 03:27ㆍ닥터 이야기
아직도 모르겠느냐!
반드시
이렇게 전쟁을 끝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에서 이순신장군 대사中에서
25년 전
함께 살았던 사촌형이
결국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택했다
우리 일가친척들
모두 청천벽력 날벼락에
패닉 상태가 돼버렸다
제일 먼저 장례식장 빈소를
찾은 할머니와 나는
위패도 없는 빈소에서
멈추지 않는 눈물을 삼켰다
자신의 실패를 후회하며 살던 형은
결국 형수님께 버림받고
싸늘한 시신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할아버지 죽음
그 아픔이 사라지고
슬픔의 고통에서 나오지 못했고
충분한 애도의 시간도
갖지 못했는데
또 죽음이라니
나 또한 처음이었고 짧지만
폐쇄병동 입원치료 후
낮아진 자존감에
매일매일 우울했고 슬펐다.
처음 발병된 양극성 행동장애가
왜 내게 발현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설명, 설득도 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사건경위를 살펴보려
관할 경찰서를 방문했고
담당자와 아버진 간단한 인사와 함께
사건기록을 살폈다.
나도 가까운 거리였기에
글씨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몇 장의 사진들은
너무 참혹했다.
돌아온 장례식장
큰아버지 내외분이 도착하셨다.
말씀을 잃어버리고 눈물만 흘리시던 큰아버지
그리고
내 손을 붙잡으며
"승석아, 내 아들이 죽었데? 진짜야?"
입술은 나를 향해 떨리는 소리를 전했지만
이미 큰어머니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장례식장이 부산해졌다.
빈소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위패도 없던 빈소에서
서너 시간 통곡하시던 할머니는
혼절하셨다.
나도 사실 폐쇄병동을 나서고
매일매일
생각을 멈추고 있어도
언제나 죽음 앞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며 놀랬다.
조증 이후 퇴원 이후
일상에 돌아왔지만
난 언제나
자살의 문턱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멍하니 약기운에 취해
온종일 정신이 나간채
하루하루 시간을 흘려보냈다.
가까운 가족들의 위로도
친구의 위로도
소용없었다.
딱 한 사람
그녀만이
나를 위해 편지를 보내오고
내가 그립다며
갖가지 액세서리 용품을 보내었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자기도 이제 성인이라며
끝없는 고백을 이어나갔다.
나이차가 문제가 아니었다.
성년이 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매 순간 후회의 늪 가운데서
발버둥도 치지 못하고
가라앉고 있는데
무엇을 할 수가 있는가?
정신을 가다듬으려
장례식장 입구를 빠져나와
천변을 걷기 시작했다.
햇볕이 따스했다.
순간 바람이
나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가슴과 귀를 울리는 소리
"아직도 모르겠느냐!"
하늘을 보았다. "무슨 소리지"
잠시 후
더 거센 바람이 불더니
"아직도 모르겠느냐!"
순간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주님! 알겠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콧물과 눈물이 동시에 터지고
꿇었던 무릎은
이내 쓰러지고
나는 천변 잔디에
누워졌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제가 무얼 해야 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2년 후
나는 다시
낯선 남자들에게 끌려
하얀 건물로 들어갔다.
두 번 다시 가기 싫은
생각조차도 하기 싫은
하얀 벽
분홍색 문
초록색 창틀
다들
초점 잃은 눈동자로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그곳에
내가 또 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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