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8. 21:20ㆍ방승석목사의 말씀묵상과 마음인사이트
끝자리(末席)의 영성
김애영
(한신대 신학과 교수)
복음서들은 한결같이 예수를 가난한 사람들, 변두리 혹은 주변부에 속한 사람들, 고향 잃은 사람들과 함께 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는 힘없는 사람들의 곤궁함을 함께 느끼고, 함께 괴로워할 줄 알았다. 또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왔다고 하는 말씀에서 보여 주듯이 예수는 “끝자리, 말석의 영성”을 실천하셨다. 칼 마르크스가 어린 딸을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용서 받아야하고 용서받을 수 있으니, 이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예수의 행위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마르크스는 예수께서 보여준 “끝자리, 말석의 영성”이 참된 그리스도교의 영성이라는 사실을 올바로 파악한 것이다.
나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비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신자이든 개신교 신자이든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과 동떨어져 있는가에 대한 극적인 사례를 위해 최근에 행해진바, 전임 교황의 장례식과 새로운 교황의 즉위식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상을 하직하자마자 온갖 매스컴에서는 “선하게 살다 복되게 죽다” 라는 善生福終을 줄여 선종(善終)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교황의 서거를 전후해서 방영된 그의 일생에 대한 조명, 장례식, 그리고 새로운 교황 선출과정과 즉위식을 텔레비전과 신문 등의 각종 매스컴은 거의 매일 보도하였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저 바티칸에서 일어난 장면들을 목격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가 남미해방 신학을 억압하고, 동구권 붕괴에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여성 사제직에 반대하는 등 일련의 보수적 가톨릭 정책을 추진해 온 것에 대해, 그리고 새로운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전임 교황의 정책을 보좌하며 뒷받침했다는 점에 대해 진보적인 가톨릭 좌파들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보도는 어느 한 모퉁이에서 울리다 사라졌지만-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쏟아지는 명예와 존경과 사랑과 찬사의 물결을 접하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매우 부러움 섞인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선하게살다 복되게 죽다”라는 교황의 모습은 참혹하게 십자가에 달려 숨을 거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고통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적어도 어느 한 순간은 떠올리지 않았을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좁은 문, 생명의 길로 들어가라는 성서의 말씀에 늘 역행하지 않는가. 그리스도교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그리하여 자신의 윤리를 ‘빈정대는 자의 윤리’라고 불렀던 철학자 니이체는 “이미 ‘그리스도교 세계’라는 말은 오해이니 근본적으로 오직 단 한 사람의 크리스천이 있었으니,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오직 단 한사람의 크리스천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냉혹한 비판 앞에 우리는 처해 있다. 우리는 끝자리, 말석의 영성을 늘 외면하면서 세상의 온갖 명예와 물욕과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으니, 이는 모든 종교적인 것, 모든 우상화, 모든 보장들, 모든 형상들, 확실하고 안전한 것, 존속을 약속하는 것들에 온통 우리의 혼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십자가는 모든 것을 시험한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적이라고 불리 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증명하는 것은 십자가인데, “끝자리, 말석의 영성”을 실천하신 분은 십자가 처형으로 최후를 맞이하셨고, 그 힘없이 비참하게 처형당하신, 그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즉 처형당한 어린 양이 세상을 이기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이 바로 하나님의 영, 우리로 하여금 끝자리, 말석의 영성을 선택하게 하는 근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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