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심리상담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2023. 12. 27. 12:28심리학_상담학 이야기

The therapists using AI to make therapy better

 

AI가 심리상담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심리상담의 효과와 원리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나누는 대화를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일일이 분석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에 AI를 활용한다면 어떨까? AI를 이용해 더 효과적인 심리상담법을 분석해서 실제 상담에 적용한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Charlotte Jee

2021년 12월 13일

 

 

케빈 코울리(Kevin Cowley)는 1989년 4월 15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 그는 노팅엄 포레스트와 리버풀의 FA컵 준결승전을 보기 위해 영국 셰필드에 있는 힐스버러 스타디움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당시 그는 17살이었다. 화창하고 맑은 오후였다. 그날 축구팬들은 스타디움 관중석을 가득 메웠다.

 

그는 관중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 사이에 꽉 낀 채로 주머니에서 손조차 뺄 수 없을 만큼 짓눌려 있었던 상황을 기억한다. 리버풀이 득점을 할 뻔하면서 팬들이 흥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뒤편에 있던 안전 철망이 무너져내렸다.

 

수백 명이 쓰러졌고, 그들이 도미노처럼 옆 사람들을 쓰러뜨리면서 계속해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깔리기 시작했다. 코울리도 그들 아래에 깔렸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코울리는 어떤 사람 아래 깔린 채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가득한 가운데서 정신을 차렸다. 땀 냄새, 소변 냄새가 뒤섞인 악취가 났고 사람들의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옆에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던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여전히 그 남성이 그날 사망한 94명 중 한 명일지 궁금해하고 있다.

 

이 모든 기억들은 코울리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30년 동안 그는 반복해서 떠오르는 기억과 불면증으로 인해 고통받았다. 일을 하는 데도 문제가 생겼지만 아내에게 말을 하기에는 너무 수치스러웠다. 그저 술을 마시며 기억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을 떨쳐내고자 했다. 그러다가 2004년에 어떤 의사의 소개로 수습 심리상담사를 만났다. 그러나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두세 번 만에 상담을 그만뒀다.

 

그러나 2년 후에 그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심리상담 광고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다시 한번 심리상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문자를 통해 심리상담사와 10여 회 정도 정규 세션을 가진 후에 49세의 코울리는 마침내 끔찍했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코울리를 치료한 영국의 정신건강 클리닉 아이에소(Ieso)의 최고 연구 책임자 앤드루 블랙웰(Andrew Blackwell)은 “몇 마디 말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심리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말을 전달하는 것이다. 아이에소의 블랙웰과 동료 연구자들은 심리상담 세션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분석하는, 정신건강 치료의 새로운 접근법을 탐구하고 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자연어처리(natural-language processing, NLP)를 사용하여 각기 다른 정신질환을 치료할 때 심리상담사와 내담자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심리상담사들에게 심리상담에 관한 더 나은 통찰을 제공하여, 경험이 풍부한 심리상담사들은 계속해서 높은 수준의 상담 실력을 유지하고 수습 심리상담사들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심리 치료가 부족한 상황인데, 이러한 연구를 통해 심리상담 세션의 수준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리면 클리닉들이 수요를 충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접근법은 애초에 ‘정신요법(psychotherapy)’의 원리를 정확히 드러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신요법이 어떤 식으로 환자에게 효과를 발휘하는지에 대해서는 임상의들과 연구자들도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 심리상담에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면, 의사들이 약물을 처방할 때처럼 환자 개개인에 맞춰서 적절한 정신요법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

 

말을 이용하는 방법

심리상담의 성공 여부는 상담자와 내담자 간에 오가는 말에 달려있다. 심리상담이 수십 년 동안 현재와 같은 형태로 존재해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심리상담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심리상담을 위해서는 심리상담사와 내담자가 좋은 관계(rapport)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지지만, 특정한 질환에 어떤 치료 방식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신체적인 증상을 치료하는 것과 비교하면 정신질환 치료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치료법이 처음 개발된 이래로 정신질환 치료율은 정체되어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상태가 더 악화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일부 심리상담사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결과를 거두는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수년간 ‘대화요법’을 연구하고자 했다. 뛰어난 심리상담사의 경험과 직관을 기반으로 하는 ‘대화요법’은 과학이라기 보다는 기술(art)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부분이 효과가 있고 왜 효과가 있었는지를 수치로 나타내는 것이 이전에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가령, 미국 유타대학교의 정신요법 연구자 잭 이멜(Zac Imel)은 심리상담 세션에서 오간 대화 스크립트를 손으로 직접 분석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데, 그는 그 연구에 대해서 “끝이 없는 일이었다. 분석해야 할 양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았다. 게다가 수십 년 동안 작업을 했는데도 알아낸 것이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I가 상황을 바꾸고 있다. 자동번역을 수행하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이용하면 방대한 텍스트를 빠르게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제 연구자들은 끝이 없을 만큼 길고, 아직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데이터, 바로 심리상담사들이 사용하는 언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드디어 심리상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 증상을 치료받고 잘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블랙웰의 연구팀 외에도 이러한 비전을 좇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미국의 기업 리슨(Lyssn)이며, 이들도 비슷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리슨은 앞서 언급한 이멜과 워싱턴대학교에서 심리학 및 머신러닝을 연구하는 데이비드 앳킨스(David Atkins)가 공동 설립한 기업이다.

 

블랙웰의 연구팀과 리슨의 연구팀은 심리상담 세션의 대화 스크립트를 이용해 AI를 학습시키고 있다. NLP 모델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세션 당시에 심리상담사와 내담자의 말이 각각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분해서 수백 개의 스크립트에 직접 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세션은 심리상담사가 내담자에게 건네는 인사로 시작해서 내담자의 기분에 관한 대화로 옮겨갈 수 있다. 뒤에 나오는 대화에서는 심리상담사가 내담자가 가져온 문제에 공감하고, 내담자에게 지난번 세션에서 소개한 방법을 사용해 보았느냐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대화는 이런 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들이 개발하는 기술은 영화 리뷰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분류할 수 있는 감성분석 알고리즘(sentiment-analysis algorithm), 또는 영어와 중국어 사이의 관계를 학습하는 번역툴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물론 이 경우에 AI는 자연어를 심리상담 세션에서 각기 다른 말이 갖는 역할을 드러내는 일종의 바코드나 지문 같은 것으로 번역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세션에서 건설적인 심리상담과 일반적인 잡담에 각각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지도 알아볼 수 있다. 거의 650명에 달하는 아이에소 클리닉 소속 심리상담사들을 감독하는 아이에소의 최고 클리닉 관리자 스티븐 프리어(Stephen Freer)는 이러한 정보를 살펴보면 심리상담사들이 앞으로 있을 세션에서 잡담보다 심리상담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가오는 위기

아이에소와 리슨이 처리하고 있는 문제들은 긴급한 사안들이다. 처음에 소개했던 코울리의 사례는 정신건강 치료의 두 가지 주요 단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접근성과 세션의 질(quality)이다. 코울리는 치료를 처음 시작하기 전에 15년 동안 고통받았고, 2004년에 처음 정신치료를 받으려고 시도했을 때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도움이 되는 치료를 받기까지 그에게는 이후로도 다시 15년이 걸렸다.

 

코울리의 경험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드문 사례는 아니다. 점점 다가오는 ‘정신건강 위기’에 대한 경고들은 기본적인 진실 하나를 무시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정신치료에 대한 낙인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는데도 정신건강 문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5분의 1 정도이지만, 정신질환자 중 75%는 어떤 치료로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치료를 받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단 절반 정도만이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블랙웰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정신건강 시스템을 가진 미국에서도 상황이 이러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TED 강연에서 “우리가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갔는데, 다리를 고칠 가능성이 절반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정신질환 치료율을 더 높일 수 있도록 도전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팬데믹이 상황을 악화시켰지만, 이 상황의 원인은 아니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수요와 공급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수요가 늘어난 것은 우리 생애에 가장 힘든 집단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정신질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의 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공급 쪽의 문제는 좋은 심리상담사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이것이 아이에소와 리슨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프리어에 따르면 사람들은 보통 심리상담사의 수가 많을 테니 그중에서 더 좋은 심리상담사를 고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실수라고 생각한다. 도움이 되는 심리상담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이에소는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AI를 이용해서 상담 치료의 품질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에소는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의 지원을 받아 문자나 영상을 통해 인터넷으로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클리닉 중 가장 큰 곳이다. 이곳의 심리상담사들은 지금까지 약 8만 6,000명의 내담자를 대상으로 46만 시간 이상의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꿔서 문제를 관리할 수 있게 돕는 기법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효과적인 방식)를 제공했으며, 기분장애와 불안장애, 우울증, PTSD까지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아이에소는 모든 정신질환에 대한 자사의 치료율이 53%이며, 영국 전국 평균인 51%에 비해 높다고 설명했다. 차이가 2% 정도이므로 적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매년 영국에서 대화요법 치료를 받는 사람이 160만 명에 달하기 때문에, 2%면 수만 명이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이에소는 치료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2013년부터 아이에소는 우울증과 범불안장애에 집중하면서, NLP가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데이터 중심 기법을 사용해 해당 질환의 치료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아이에소에 따르면, 우울증에 대한 국가 평균 치료율은 50%지만 아이에소의 2021년 치료율은 62%이며, 범불안장애의 경우 국가 평균 치료율은 58%지만 아이에소의 치료율은 73%에 달한다.

 

아이에소는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가 그것들이 가장 흔한 정신질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강박장애처럼 인지행동치료를 이용한 다른 증상에도 더 나은 치료율을 보이고 있다. 아이에소가 치료율을 얼마나 더 끌어올릴 수 있을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제 아이에소는 다른 질환에도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론적으로 AI를 사용해 세션의 질을 모니터링하면 상담사들이 더 많은 내담자를 볼 수 있게 된다. 심리상담의 질이 상승하면 비생산적인 세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아이에소는 치료의 효율에 NLP가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완전히 밝혀내지 못했다.

 

프리어는 “현재 심리상담 1,000시간이면 우리는 80~90명의 내담자를 치료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시간을 사용해서 200명, 300명, 심지어 400명까지 치료할 수는 없을까? 우리는 그 질문을 탐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에소와 달리 리슨은 직접 심리상담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에 세션의 품질관리(QC)와 훈련을 위해 영국과 미국의 다른 클리닉과 대학들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리슨의 미국 내 고객 가운데는 캘리포니아의 ‘오피오이드 원격 치료 프로그램(telehealth opioid treatment program)’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클리닉의 치료 품질을 모니터링하고자 한다. 리슨은 펜실베니아대학교와의 협력을 통해 필라델피아 전역에 자사의 기술을 활용하는 인지행동치료 심리상담사를 공급하려고 하고 있다.

 

영국에서 리슨은 아이에소처럼 NHS의 지원을 받아 정신건강 치료를 제공하는 독립 클리닉, 트렌트 심리상담 서비스(Trent Psychological Therapies Service, 트렌트PTS)를 포함해 세 개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트렌트PTS는 아직 리슨의 소프트웨어를 테스트하고 있다. NLP 모델이 미국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리슨과 협력하여 이 모델이 영국 지역 악센트를 인식할 수 있도록 작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트렌트PTS의 클리닉 서비스 책임자 딘 레퍼(Dean Repper)는 심리상담사들이 모범 사례를 표준화하는 데 소프트웨어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수년간 경험이 있는 심리상담사라면 최상의 결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레퍼는 이를 운전에 비유했다. “처음 운전을 배울 때는 안전 운전을 하는 수많은 방법들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운전자는 안전 운전을 그만두고 결국 과속 딱지를 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체가 아닌 개선

AI 사용의 핵심은 인간의 치료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는 것이다. 우수한 정신건강 치료가 부족한 것은 단기간에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낙인을 줄이고, 재정 지원을 늘리고, 교육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특히 블랙웰은 AI에 관한 많은 주장들을 일축했다. 그는 “위험할 정도로 과장된 광고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챗봇 심리상담사와 핏비트(Fitbit) 같은 기기의 앱을 통한 24시간 모니터링 같은 것들에 대한 수많은 광고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대부분은 실현되려면 아직 몇 년이 더 필요하거나 절대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것들이다.

 

블랙웰은 “웰빙 앱 같은 것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손목에 기기를 채우고 그 기기의 앱들이 우울증을 치료해줄 거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도움을 받을 기회를 빼앗아 가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신요법 개선을 위한 연구 자료를 수집하고자 할 때 부닥칠 수 있는 한 가지 문제는 심리상담사와 내담자에게 상담 세션에서 나눈 사적인 대화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상담사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전문적인 업무가 모니터링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까?

 

레퍼는 어느 정도 꺼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는 “이 기술은 심리상담사들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마치 상담실에 처음으로 제삼자를 데려다 놓고 모든 대화를 받아적으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트렌트PTS는 세션이 모니터링될 것을 예상하는 수습 심리상담사들에게만 리슨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레퍼는 그들에게 심리상담사로서 자격이 생기면 그들이 모니터링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더 경험이 있는 심리상담사들에게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소프트웨어의 이점을 설명해서 설득시킬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을 상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자신도 심리상담사로 일했던 이멜은 설명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추가 정보를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에 대해 “내담자와 단둘이 있는 것은 어렵다. 일주일에 20~30시간씩 다른 사람과 상담실에 앉아서 일을 하는데, 동료로부터 피드백을 전혀 받지 못한다면 실력을 개선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리어도 이에 동의한다. 아이에소에서 심리상담사들은 슈퍼바이저와 함께 AI가 생성한 피드백에 관해 논의한다. 이러한 논의의 목적은 심리상담사들에게 다른 심리상담사들이 배워야 하는 그들의 장점들과 개선할 필요가 있는 부분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전문적인 능력을 스스로 개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아이에소와 리슨은 이러한 작업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거대한 데이터 세트를 탐구하는 방식으로만 드러나는 심리상담의 요소들을 알아낼 수 있는 분명한 잠재력이 있다. 앳킨스는 AI의 도움 없이 1,000시간에 달하는 심리상담을 모아서 분석했던 2018년의 메타분석을 언급했다. 그는 “리슨은 이제 그 정도 양을 하루 만에 처리한다”고 밝혔다. 아이에소와 리슨이 각각 발표하는 새 연구들은 수만 개의 세션을 분석한 결과이다.

 

예를 들어, 2019년에 ‘미국의사협회 정신의학저널(JAMA Psychiatry)’에 게재된 한 논문에서 아이에소 연구자들은 약 1만 4,000명의 내담자를 대상으로 하는 9만 시간 이상의 인지행동치료 세션에서 심리상담사들의 말을 분류하도록 학습한 딥러닝 NLP 모델을 설명했다. 그 알고리즘은 대화의 표현이나 짧은 단락들이 인지행동치료 기반 대화의 사례인지(내담자의 기분과 상황 확인, 세션에서 배운 기술을 사용해봤는지 확인, 변화 방법 논의, 미래 계획 등), 아니면 인지행동치료와 관련이 없는 일반적인 잡담인지 구별하는 법을 학습했다.

 

연구자들은 인지행동치료 대화 비중이 높을수록 정신질환 치료율이 더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연구 결과가 치료법으로서 인지행동치료의 효과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인지행동치료는 이미 효과적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방법이지만, 이 연구는 그 일반적인 생각을 뒷받침하는 첫 번째 대규모 실험이다.

 

올해 발표된 논문에서 아이에소 연구팀은 심리상담사가 아닌 내담자의 말에 주목했다. 그들은 자체적인 분류에 따라 ‘변화대화 능동(change-talk active)’ 반응(‘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처럼 변화 의지를 보이는 표현들)과 ‘변화대화 탐험(change-talk exploration)’ 반응(내담자가 변화하려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 더 많을수록 정신질환 개선과 세션 참여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반대로 이런 종류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현재 심리상담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경고 신호가 될 수 있었다. 세션의 스크립트를 연구하여 심리상담사들이 어떤 말로 그런 반응을 유도했는지 알아내서 다른 심리상담사들에게 같은 방식을 교육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에는 가치가 있다고 옥스퍼드대학교 임상심리학자 제니퍼 와일드(Jennifer Wild)는 말했다. 그녀는 이러한 연구가 정신치료를 조금 더 근거 중심으로 만들고 심리상담사를 훈련하는 방식의 정당성을 입증하면서 이 분야의 발전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와일드는 “이번 연구 결과의 이점 중 하나는 이제 임상의들을 교육할 때 프로토콜을 준수할수록 증상을 개선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하며, “정신질환 치료가 즉흥적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계속 받아야 한다. 이제 심리상담사들은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럴 수 있는 이유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그것이 중요한 부분이고, 또 새로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와일드는 또한 이러한 AI 기술을 활용하면 내담자에게 적합한 심리상담사를 짝지어주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내담자 개개인에게 어떤 종류의 심리상담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 분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어떤 증상에 어떤 치료 기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그 답을 마침내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멜은 캘리포니아의 거대 의료서비스 제공기업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가 1년에 3백만 번의 심리상담 세션을 제공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그들은 그 세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가령, 어떤 병원에서 심장병 환자 3백만 명을 치료한다고 하면, 이 병원은 그들 중 몇 명이나 스타틴(statin, 콜레스테롤 억제제)을 처방받았는지,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약을 복용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러면 거의 인구 전체를 표본으로 삼는 것과 비슷한 대규모 분석을 진행할 수 있다. 정신요법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블랙웰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우리는 실제로 향후 5년 이내에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 시대에 돌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치료법을 섞어서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랙웰은 미국에서 보험사가 보험 지급을 해주는 정신치료 기법이 450종류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외부에서 보면 모든 기법이 각각 나름대로 좋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러나 우리가 심리상담에 대해 일종의 화학 분석을 할 수 있다면, 효과를 발휘하는 특정 ‘구성 요소’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정 내담자를 위해 각기 다른 심리상담에서 그러한 몇 가지 요소들을 선택해 조합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그러한 요소들을 결합하면 완전히 새로운 치료법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가능성은 그러한 기술을 활용해서 특히 좋은 성과를 내는 심리상담사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다른 상담사들에게 같은 방법을 가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프리어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심리상담사들 중 10~15%가 “마법 같은 일을 해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심리상담사들은 꾸준하게, 엄청나게 많은 내담자들을 상대하면서도 그들의 상태를 호전시키고 그들이 잘 살 수 있게 도와준다.”라고 말했다.

 

프리어는 케빈 코울리를 치료했던 사람이 바로 그런 종류의 심리상담사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케빈의 사례가 매우 강력한 사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가 고통받았던 긴 세월을 떠올려 보라. 케빈이 17세, 또는 18세 때 그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