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승석목사][신문팔이][중앙일보][샘신경정신과][김상욱원장][시내버스][신문배달부][중학시절][10대] 소시적 신문을 돌렸다

2024. 6. 3. 11:30좋은 글 이야기

신문팔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나는 중학교때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아버지 덕분이다.
영흥중학교 총동문회 장학금이기에
아버지가 영흥중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면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겠지.
 
하지만
어릴적부터 책임감과 생활력을 교육받은 나!!!
물론
당연히 그것은
길은복목사때문이다.
 


국민학교 3학년 어느날
어머니가 밥먹고 있던 나에게 수세미를 내밀었다.
 
앞으로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자기가 설거지 한다.
 
나는 따졌다.
왜 아빠는 설거지 안하는데
나만 해야하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것이 바로 오리지널 페미니스트들의 첫번째 운동이다.
 
모든 사람들은
한국의 페미니즘의 대가 
고 김대중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여사님이 호주제페지
그것이 페미니즘운동의 시작이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사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여신도회
그리고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여교역자협의회등
엄마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서는
 
일상에서의 여성해방운동을
바로 남자들을 부엌으로
 
남자들이 밥을 할수있는 시대
남자들이 설거지를 하고 
남자들이 세탁기를 돌리는 시대를 기치로
운동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연구 
그 운동의 연구물이다.
 
결국 난 지금도 손빨래를 하고
난 지금도 설거지를 하고
난 지금도 방청소를 하고
난 지금도 김을 매고
풀을 뽑고
난 지금도
요리를 한다.
 
철저히 내 삶속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한다.
 
자 다시 신문팔이 이야기로 돌아간다.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녔지만
 
당시는 중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기에
일정의 육성회비와 수업료를 납부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항상 집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길은복목사의 말을 빌리자면
당신은 자녀를 2명이상 키울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 교육에 너무 많은 돈이 들기때문이다.
그래서 당신 임신을 하지 못하는 불임수술로 배꼽수술이라는 것을
했다고 증언한다.
 
배꼽수술
배꼽수술까지 한 어머니의 경제적 어려움을 듣고
 
아들은 고민한다.
그럼 내 용돈은 내가 벌어야지
 
그리고 며칠후
새벽 목포역으로 아침 찬 바람을 맞으며 갔다.
 
사실은 
신문배달은 한번 도전한 적이 있다.
 
가난한 한 교인의 가정이
언제나 겨울이면
너무 멋진 파카를 입고 다니기에
 
형.... 그 파카는 엄청 비싼건데
누가 사줬어 
물어보면
 
우리 지국장님이 사줬어
무슨 지국장
우리 신문지국장
아하..
신문을 돌리면 옷도 사줘
응 옷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지국장님이 좋은 분이셔
 
그때 나도 한번 해볼수 있어
하지만 가질 못했다.
 
교인의 집이기에 챙피했다.
 
내가 새벽 목포역으로 가서 신문지국장을 만난 것은
국민학교 6학년 반 친구인 우현이를 따라서이다.
 
그리고 신문에 삽지하는 모습
신문을 접는 방법등을 보았다.
 
그 기억을 더듬으며
목포역을 향했다.
집에서 출발한 시간은 새벽 4시
목포역에 도착하니 새벽 4시 40분
많은 신문사들이
각각 광고지들을 삽지하며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용기가 나지않아
추운 새벽바람에도 
목포역 바깥에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왜 고등학교 형이
넌 누구야
왜 왔어
 
내 신문돌리려구요
그래 
이리와...
 
신문 돌려봤어
아니요
 
그럼 이리와
지국장님 이 친구가 신문돌리고 싶데요
 
그럼 내구역 이애기한테 하라고 해요
 
그래서 돌리게 시작한 신문배달부 인생
그 형을따라 매일 80부의 신문을 돌렸다.
 
아침잠을 깨우며 중학 3년의 마지막을 
보내기 시작했다
늦은밤까지 공부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신문을 돌리고
 
내인생이 
한 고학생의 인생이 될줄이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말을 못했다.
아버지는 경찰 그것도 정보과 
어머니는 전도사 
 
그런 집아이가 왜 신문배달을 하냐고
 
그렇지만
난 해야했다.
사고 싶은거
가지고 싶은거 
먹고 싶은 거는 없었지만
막연히 돈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그때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좋은기억 하나... 지국장님이 아침 간식을 가끔 사주셨다.
둘.. 시내버스를 탈때 신문을 내밀며 버스비를 받지 않았다.
 
나쁜기억 하나.. 신문 돌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어려운 살림살이이다 보니
가난한 어린학생들이라고 함부로 무시하고 때리던 사람들도 있었다.
나쁜기억 둘.
난 부모가 다 있는데 
신문돌리는 애들은 편부모거나 조부모세대로 오해하고
물론 대부분 그런 아이들이 
내 당시에는 신문을 돌렸다.
 
여튼
오늘은 
그 기분을 내려고
샘신경정신과 김상욱원장님께
라면을 
그렇지 정확히는 팔도왕뚜껑을 가져다 드렸다.
 
미수금에서 제외해 달라고
 
당연히 간호사 선생님은 괜찮다고 
안받는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원장님도 가끔 바쁠때
식사시간도 없을때 요긴하게 쓰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진료비는
왕뚜껑 3개!!!!